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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이프] 尹의 자유론 어디서 왔나… 새뮤얼슨·프리드먼 50년 논쟁

작성자 : 이일의


    [문화·라이프] 尹의 자유론 어디서 왔나… 새뮤얼슨·프리드먼 50년 논쟁

    박정훈 논설실장
    입력 2022.06.11



    폴 새뮤얼슨 19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경제학자들의 생각 -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새뮤얼슨 VS 프리드먼|니컬러스 웝숏 지음|이가영 옮김|부키|552쪽|3만원

    조선일보 북스 팀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윤석열 대통령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언급하면서 물과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던 자유의
    어젠다를 되살려냈다. “자유의 재발견”을 촉구한 윤 대통령의 16분 취임사는 그야말로 ‘자유주의 선언문’
    이었다. ‘자유주의자 윤석열’을 만든 멘토가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다.
    윤 대통령은 프리드먼의 대표작 ‘선택할 자유’를 자신의 인생 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니 프리드먼은 윤석열 국정 5년을 들여다볼 ‘철학적 창문’인 셈이다.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은 경제학계의 두 거두가 반세기에 걸쳐 펼친 지적(知的) 대결의 기록이다.
    ‘타임스’의 창간 편집인인 니컬러스 웝숏은 이 두 석학의 품격 있는 대결을 꼼꼼하게 추적한다. 자유주의자
    프리드먼의 대척점에 선 인물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1915~2009)이다.
    두 사람은 유태인 가계에다 절친한 친구였지만 학문적으론 필생의 숙적이었다. 새뮤얼슨은 케인스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혼합 이론의 주창자였고, 하이에크(1899~1992)의 계보를 잇는 프리드먼은 케인스를
    매장하는 데 학문을 바친 반(反)케인스주의자였다.


    폴 새뮤얼슨(왼쪽), 밀턴 프리드먼

    20세기 중반, 경제학계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의 일반균형 이론에 의해 평정돼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을 ‘뉴딜’로 극복한 이래 케인스주의는 지배적 사조의 위치를 굳혔다. 재정을 통한 수요
    조절로 경기 변동을 관리한다는 케인스식 처방은 자본주의에 영원한 번영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였다.
    새뮤얼슨은 케인스 모델에다 신고전학파 이론을 통합한 ‘신고전파 종합이론’을 완성해 주류 경제학의 중심
    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기본 전제부터 부정하고 나섰다. 재정 지출로 수요를 창출하는 ‘승수(乘數)
    효과’가 과장됐음을 ‘항상소득’ 가설을 통해 반증했다.

    두 사람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지점은 정부냐, 시장이냐의 논쟁이었다.
    새뮤얼슨은 정부가 인위적 개입을 통해 시장의 실패를 보정해야 한다고 본 반면 프리드먼은 정부 개입을
    혐오했다. 프리드먼은 높은 세율이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규제는 기업가 정신을 무디게 만든다며 “정부는
    문제 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고 몰아붙였다. 정부가 할 일은 단 하나, 통화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뿐인데 중앙은행도 필요없고 통화량을 계산할 컴퓨터 한 대면 충분하다고 단언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으로‘큰 정부’시대가 돌아왔다. 그렇지만 비대한 정부의 시장 개입을
    경계한 프리드먼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은 먹구름 아래에 있는 미국 연방 의회.
    /게티이미지코리아

    프리드먼의 극단적 이론은 학계에서 배척받았지만 1970년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벌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경제학의 무게중심이 정부 개입 최소화에 방점이 찍힌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진영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이후 레이건·대처 정권이 채택한 감세와 규제 완화 등으로 현실화되면서 1980년대를
    풍미한 ‘작은 정부론’을 유행시켰다.

    두 사람은 자유냐, 평등이냐의 정치 철학 논쟁에서도 대립했다,
    새뮤얼슨은 자유를 상대적인 우선순위의 문제로 보았다. 반면 프리드먼에게 자유는 모든 것의 위에 있는
    절대적 가치였다. 그는 “자유를 우선하면 더 큰 평등을 얻을 수 있지만, 평등을 우선하면 자유도 평등도
    억압될 것”이라고 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경제적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지켜주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2년 전 눈감은 프리드먼은 보지 못했지만 세상은 다시 ‘큰 정부’ 시대로
    돌아갔다.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이 펼쳐지면서 정부가 위기 대응의 사령탑이 됐다. 2020년 코로나 사태는
    정부 역할론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작고 힘없는 정부는 전염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는 50여 년 논쟁의 최종 승자는 새뮤얼슨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자유의 수호자 프리드먼이 남긴 유산은 현실 곳곳에 남아있다.
    그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 덕에 우리는 사회주의와의 경쟁을 이기고 자유 시장과 ‘선택할 자유’를 굳건히
    지켜낼 수 있었다. 정부의 팽창 본능을 견제할 이론적 틀, 방만한 복지에 대한 경계심과 이를 대체할
    ‘부(負)의 소득세’란 대안도 갖게 됐다. 앞 정권이 남긴 국가 부채와 반시장 규제, 비대해진 공공 부문을 떠안
    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 프리드먼의 자유론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책이지만
    프리드먼을 패자로 판정한 저자의 결론만큼은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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