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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반칙(反則)

작성자 : 박용설

    🔰남편의 반칙(反則) 

    독거노인이 되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다. 
    남편이 그렇게 타계했고, 내가 그렇게 남겨졌다. 100일 전의 일이다. 
    팔십대인 우리 부부의 나이로 보아서는 남편이나 아내인 나에게, 
    그리고 어느 노년들에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두드러지게 삶의 의욕과 대비(對備)가 달랐다. 
    남편은 모기에 물려도 병원을 찾는 사람이다.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 몸을 움직여 보고 혹시 불편한 곳은 없나 점검을 한다.
    남편은 몸을 신생아처럼 관리한다. 
    그의 좌우명 중 첫째는 병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음이 완치에 이를 때까지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편 아내는 어떻게 해서라도 병원에 가는 것을 피한다. 
    웬만한 병은 자연 치유가 되며 더러는 죽는 날까지 같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영양식이나 건강식은 쓰거나 역겨워도 관계(關係)없이 잘 먹는다. 
    아내는 세 끼의 밥도 소식으로 한다. 
    남편은 운동(運動)을 거르지 않고 충분히 한다. 
    아내는 산책이나 걷는 것조차도 충실히 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남편은 세상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던 사람이다. 
    아내는 염세(厭世)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의욕적인 삶의 태도는 아니다. 
    누가 보던지 이 집은 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바뀐 것이 분명하다. 

    남편은 나이가 들어 혼자가 되더라도 건강하게 살 준비(準備)를 완벽하게 갖춘 상태다.
    김치를 맛있게 담글 줄 안다. 
    몸에 좋은 영양식도 만든다. 
    여러가지 밑반찬과 저장 음식도 만든다. 
    사골을 끓이고 백숙도 끓여낸다. 
    모두 아내에게서 배운 것이다. 
    기초는 아내에게서 배웠지만 인삼 버섯 삼채 생강 등 보약제 첨가물은 남편이 연구해서 
    넣는다. 우리집은 늘 보양식 수준의 냄새가 배어있다. 

    남편은 세탁기도 돌린다. 
    청소는 배우지 않았지만 도우미를 불러 시킬 줄 안다. 
    남편은 건강관리에 무심한 아내에게 충격적인 방법으로 충고를 한다.
     “당신 죽으면 예쁘게 염해서 보내주고 곧 따라갈께... 멀리 가지 말고 가까이에 있어.” 
    라고 한다. 확신에 차 있는 말투였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그가 훌쩍 내 곁에서 떠났다. 
    병명(病名)은 폐렴이라고 하지만 그저 노환이라고 생각한다. 
    젊었다면 거뜬히 이길 수 있었을 테니까. 

    백일이 지나고 넉 달째로 접어든다. 
    둘이 살다가 혼자가 됐다. 
    남편의 방은 그대로다. 
    남편만이 보이지 않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심심하다. 

    남편은 삶의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TV를 많이 본다. 
    특히 음식 프로를 본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시장에 간다. 
    식재료와 양념을 빠짐없이 잘 사온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대량으로 사오는 것이 문제다. 
    작은 용량의 것은 사지 않는다. 
    식초도 대병으로 사고 참기름도 대통으로 사왔다. 
    남편의 눈에는 적은 용량의 것은 양에 차지 않는다. 
    모든 것이 커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잘 했다고 칭찬한다. 
    일을 거들어 주지도 않으면서 타박만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알 때까지 기다린다. 

    남편은 전화 걸기를 좋아한다. 
    고향의 어릴 적 친구부터 외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까지 안부 전화를 한다. 
    남편이 관리하고 있는 친지는 약 100명 정도인 것 같다. 
    그런 관계로 밖에 나가서 남편과 통화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무엇이고 사는 것을 무척 좋아 한다. 
    과일과 과자(菓子) 등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좋아 하는 것들을 많이 산다. 
    “당신 좋아 하는 거야.“  
    아주 비싼 태국산 애플망고를 들고 들어온다. 
    그러나 먹기는 남편이 먹는다. 그리고 다시 사온다. 
    살 때는 아내가 좋아 할 것을 생각하고 사지만 먹을 때에는 잠시 아내를 잊고 만다. 
    그러나 언제나 아내 것을 사 온다. 

    오늘도 포도를 사왔다고 했다. 근데 보이지 않는다. 
    '여보 포도 사왔다며 어디있어요.?' '응 그것 내가 먹었어 또 사다줄께…' 한다. 
    그러던 남편이 없으니 주전부리가 떨어졌다. 
    그동안 남편 덕분(德分)에 잘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게 되려는지?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맛있고 비싼 것을 사온다. 
    나도 남편을 위해서 뭔가를 사야 한다. 그래야 냉장고(冷藏庫)가 채워진다.
    그러나 남편이 없다. 먹어 줄 사람이 없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냉장고가 채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일은 딸이 온다고 하니 조금 준비를 해야겠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가면서 마스크 착용을 안했다. 
    급히 뛰어 들어오며 “여보  마스크~” 하고 남편에게 마스크를 집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 남편은 없다. 아직도 남편의 부재(不在)를 실감하지 못한다. 

    ‘여보 나 심심해.’ 
    오래 같이 살던 부부에게는 하루라도 먼저 떠나는 사람이 승자다. 
    남편은 결승선까지 와서 갑자기 스케이트의 날을 라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쇼트트랙 빙상 선수처럼 운명의 결승선을 넘어 들어갔다. 
    남편은 나를 밀치고 자기의 오른편 다리를 쭉 뻗어 넣은 것이다. 
    그는 운명의 선을 통과했고 나는 낙오됐다. 그래서 돌싱이 됐다. 남편의 반칙이다.

    나는 오늘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미술 공부는 일주일에 한 번 지도를 받는다. 
    선생님은 어떤 그림을 배우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초상화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남편의 초상화를 그려 보려고 한다. 

    그리는 동안 마주 앉아서 못다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서다. 
    아버지와 남편에게는 할 말이 많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시집살이 하면서 효도 못한 것을 사과드리고 싶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왜 거짓 말을 했냐고 따져 보려고 한다.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나는 믿었었다. 

    나를 먼저 보내고 뒷정리하고 곧 뒤따라 갈테니 멀리가지 말라던 그 말, 
    그 변명을 꼭 듣고 싶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의도적으로 외출을 하려 한다. 
    외출복을 차려 입고 격조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며칠 안으로  벗나무에 꽃송이가 벌어지는 것도 보겠고….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가 그리고 싶은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을 때 까지 분발하려 한다.(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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