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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비의 칼과 펜] 로마처럼…그리스의 폴리스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성자 : 이일의


    [윤비의 칼과 펜] 로마처럼…그리스의 폴리스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입력 : 2022.06.10

    (4) 폴리스와 그 비판자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바라보는 안티고네, Lytras nikiforos 작품, 1865년.

    폴리스의 등장은 서구에 ‘국가’가 출현하는 과정
    혈연·친족·의리·복수 우선되고 ‘정의’이던 시대
    평등한 ‘시민’의 개념은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다

    정치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는 우리가 왜 국가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규칙이나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국가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은 냉정히 말해 대부분 나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내리는 결정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나는 나의 아이를 굳이 만 5세도, 만 7세도 아닌 만 6세에 학교에 보내야 하는가? 국가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왜 나는 같은 돈을 벌고서도 일정 구간을 넘어서는 소득에 대해서는 더 많이 세금을 내야
    하는가? 국가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간도 국가가 결정했다.)
    왜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총을 들고 피를 흘리는가? 한 국가가 전쟁을 시작하고
    그에 대해 다른 국가가 맞서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국가가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국가의 정당성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행동과 운명에 남의 의지를 개입시키는 일이다.
    전쟁을 할 것인가에 대해 국민투표를 해서 전쟁을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자. 이제 나는 전장에
    나가야 한다. 그러나 내가 사는 나라의 다수 국민이 전쟁을 원한다는 것이 내가 내 생각을 버리고 목숨
    까지 바칠 이유가 되는가? 만일 단지 1표 차이로 전쟁이 결정되었다고 하자. 그 1표가 나의 신념과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시민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를 타락시킨다고 고발당했다.
    그는 법정에 나가 동료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변호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악의에 의해서건 누군가에게 속아 판단을 그르쳐서이건 결국 사형을 내려 그를 공동체로부터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쪽을 택했다.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이 한 철학자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누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는가?

    사실 국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국가의 존재를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이론과 생각이 역사 속에서 등장했으며, 우리는 일부를
    학교에서, 일부는 교양인이 되기 위해 읽고 외웠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뼛속까지 국가의 시민이 되어,
    아예 국가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볼 능력 자체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가가 지닌 힘과 권위의 정당성을 묻는 이런 질문은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때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급진적 아나키스트, 국가를 의심 가득 째려보는
    자유지상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혐의의 눈길이 돌아온다.

    그러나 고대 폴리스의 정치사상을 이해하려면 국가의 존재와 국가가 휘두르는 강권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를 일단은 내려놓아야 한다. 폴리스의 등장은 서구의 역사에서 국가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
    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벼려져야 했다. 제도만이 아니라 생각도 그랬다.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혈연 및 친족관계 중심의 공동체와 사고체계는 밀려났다.

    이런 거대한 변화가 부드럽기는 어렵다.
    폴리스가 지배적인 정치질서로 떠오르는 내내 기존 가치관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그런 변화의 경험을
    반추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공기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국가, 그 국가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가 반드시 자연스럽고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의의는 충분하다. 잘만 하면 그런 탐구는 우리 시대에 국가를 보는 또 다른 눈을
    뜨게 하고 또 다른 상상력을 열어줄 수 있다.

    ■폴리스의 비판자들

    ‘강자의 약자 지배’ 주장한 귀족의 엘리트주의는
    고전 ‘일리아드’와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도
    ‘법 앞에 동등한 시민’보다 혈연·의리를 앞세운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역사를 돌아보며 원래 여러 개의 소도시가 아티케 지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지혜와 능력을 겸비한 테세우스가 왕이 되자 온 나라를 재정비했는데,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이런
    소도시들의 독립된 의회와 정부를 폐지하고 지금의 아테네시로 통합하여 모두를 위해 하나의 의회와
    하나의 시청사를 마련한 것이다.
    개인들은 여전히 자기 재산을 향유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들에게 아테나이를 정치 생활의 유일한
    중심지로 삼도록 강요했다.”(투키디데스 지음·천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테네로 통합되기 전 존재했던 소도시 거주민들은 흔히 자신들을 같은 핏줄을 나눈 친족으로 여겼다.
    물론 이런 생각은 다분히 허구이다. 어쨌든 이런 사회에서는 혈연 간의 의무와 의리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소도시들을 통합하며 부상한 아테네라는 이름의 정치질서는 이런 전통적 가치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과 판단기준 위에서 움직였다. 아테네에서 중요한 것은 법적으로 규정된 시민의 지위였다.
    같은 시민인 한에서 가족, 친족, 지역 등에 따른 차이는 부차적이었다. 기존 질서와 가치에 대한 전복이
    일어난 것이다. 이 과정이 편할 수만은 없었다.

    이러한 변화를 불편하게 여겼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기존의 질서에서 지배적 지위에 있던 집단, 즉
    귀족이었다. 기원전 5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시인 핀다로스는 폴리스의 법(여기에는 형식적 입법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시민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관행까지 포함된다), 그리스 말로 노모스(nomos)를
    거칠고 폭압적인 왕에 비유했다.

    “법은 모든 것의 왕이네.

    사멸하는 것과 불멸하는 모든 것의.

    가장 난폭한 것을 가져다가 정의롭게 만드네.

    지극히 높은 손으로.”(플라톤 지음·김인곤 옮김 <고르기아스>)


    핀다로스, 기원전 5세기 작품의 로마시대 모작, 나폴리.

    핀다로스는 귀족 집단의 전통적 가치, 즉 용기와 뛰어남, 영웅심, 영광, 지워지지 않는 명성을 찬양했던
    인물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혈통에 대한 긍지는 그의 가치체계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런 차이를
    무시하고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기만 하면 모두가 동일한 가치를 갖는 시민이며, 그들이 합의하는 것은
    모두가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핀다로스에게 부당하고 불편하게 들렸을 것이다. 법이 전제군주라는
    비유는 그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표현이다.

    핀다로스의 시를 플라톤은 두 차례나 화제로 삼았다. 하나는 그의 후기 대화편 <법률>이다.
    여기서 핀다로스의 시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된다. 좀 더
    긴 이야기는 초기 대화편 <고르기아스>에서 등장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칼리클레스라는 인물과
    법의 본질과 정당성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칼리클레스는 다수의 이름으로 강하고 우월한 자들을 열등한
    자들의 발아래 무릎 꿇리려는 음모라는 식으로 폴리스의 법질서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평등이 정의롭다는 생각은 사실상 강한 자들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미약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마술, 주문, 법들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강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서 칼리클레스는 핀다로스의
    시를 끌어들인다.


    플라톤의 대화 <고르기아스>의 표지, 9세기 말.

    반드시 악의 때문은 아니더라도 플라톤이 칼리클레스의 견해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혹은 부분적으로
    비틀어서 제시하였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뛰어난 자와 열등한 자 간에 근본적인 차이를 두는
    칼리클레스의 입장은 오래전부터 그리스 사회를 지배해 온 엘리트주의를 반영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의미있는 존재들은 이렇게 저렇게 신과 얽히거나 전설 속의 인물들과 친척관계에
    있는 소수 영웅들이다.

    귀족이 아닌 평민이 그나마 몇 줄이라도 묘사되는 것은 아가멤논을 비난하다가 오디세우스에게 얻어맞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물러나는, 용모, 말, 행동 어느 것 하나 볼 것이 없는 테르시테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뿐이다. 이런 시각에 물든 귀족들에게 시민들의 합의에 따른 법이 정치의 알파이고 오메가라는 주장은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폴리스의 법질서는 다른 면에서도 기존 제도 및 가치체계와 충돌하였다.
    기존 공동체에서는 혈연 및 친족 간의 의무, 친구 간의 의리 따위가 매우 중요했다. 특히 정치적
    지배집단이었던 귀족들은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적은 자신의 적이며, 그들에게 위해가 가해지면
    그것을 되갚는 것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최고의 의무이며 명예라고 믿었다.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을 들여다보면 의리와 복수가 그곳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8세기 말에서 7세기 초반 무렵에 쓰인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심지어
    정의와 법조차 이런 의리와 복수의 언어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헤시오도스는
    정의를 짓밟고 무시하면 불임, 기근, 흉작 등을 비롯하여 온갖 재앙을 겪게 된다고 경고한다.
    제우스는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으며 모든 일에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벌을 내리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헤시오도스는 정의를 제우스의 딸로 그린다. 그에 의하면 제우스가 불의한
    인간에게 내리는 벌은 딸에게 가해진 무시와 모욕에 대한 아버지의 앙갚음이다. 이는 의리와 복수라는
    관념이 얼마나 당시 사람들의 사고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폴리스 성립 이전과 이후의 가치 충돌을 가장 극적으로 묘사한 것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이다. 기원전 441년경 상연된 이 작품은 테베를 배경으로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싸움을 벌이다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테베의 왕인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가 아르고스인들의 힘을 빌려 조국을 파괴하려 했다고 비난하고
    그의 시체를 매장해 주지 말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두 청년의 여동생, 안티고네는 혈육 간의 의무를
    앞세워 왕의 명령을 어기고 폴리네이케스를 장사지내다가 결국 법을 어긴 죄로 크레온 앞에 끌려온다.
    안티고네는 비록 글자로 기록되지는 않았어도 하늘이 내린 법을 왕의 법이 넘어설 수는 없다고 주장
    하며 고집을 꺾지 않다가 결국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다.

    ■불안의 지속

    폴리스는 공동체 성원들의 고른 참여와 합의, 그에 따른 법을 핵심가치로 내세우며 마침내 그리스
    세계의 지배적 정치질서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존의 정치질서와 정치관념에 대한 폴리스의
    승리는 완전하지 못했다. <안티고네>에서 보이듯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5세기나 4세기에도 계속해서
    폴리스가 내세우는 질서와 가치, 그 이전 정치질서와 가치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런 갈등은 플라톤의 <국가>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의 본격적인 논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폴레마르코스라는 귀족 청년이 ‘친구에게 이익을
    주고 적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대답한 것을 소크라테스가 반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폴레마르
    코스의 주장은 폴리스 체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그리스 사회를 지배했던
    혈연중심적·귀족주의적 가치를 반영한다.
    플라톤이 국가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긴 논변 맨 앞에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박을 갖다 둔
    것은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의 시대에도 여전히, 폴리스 이전 전통적 정치질서와 가치체계에 대한
    향수가 꽤 널리 퍼져있었다.

    물론 궁극적 승리자는 폴리스의 옹호자들이었다. 그러나 승리는 긴 시간을 걸쳐 얻어졌다.
    모든 정치적 변화에서 그러하듯 그 과정에서 폴리스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폴리스의 질서를
    옹호하기 위해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말이 교차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승리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비의 칼과 펜] 로마처럼…그리스의 폴리스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이론을 역사 및 문화와 관련지어 연구한다. 베를린 훔볼트대 정치학과 및 역사학과,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서양정치사상을 강의하였다. 가르친다는 일을 영광으로 여기며 산다.
    2021년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독일에서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2018~2020년 한겨레 신문에 ‘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를 연재하였고, EBS <지식의 기쁨> <세바시> 등에서 강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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