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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펼쳐보기 223 / 그외 지역 05 - 티베트

작성자 : 이일의


    세상 펼쳐보기 223 / 그외 지역 05 - 티베트    

    티베트의 역사 - 유목민 이야기 30


    돌아갈 수 없는 땅,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_이달의 역사


    티베트 독자적인 문명권, 중국이 지우고 있는 역사, 토번제국에서 독립국가 티벳까지


    개요
    티베트는 중국과 인도의 사이에 위치해 있으나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에 둘러싸여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히말라야 산맥의 북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평균 고도가
    4900m가 넘어,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컬어진다. 티베트는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고립된 지역이다.

    신화
    티베트 신화는 진화론과 과거 티베트 지역의 상당부분이 바다였음을 알고 있었던 듯한,
    신비로운 성격을 띠고 있다.

    "먼 옛날 이 설역 고원은 바다였다. 바람이 일고 파도가 치니 거품이 일어나고 이 거품들이 쌓이고
    쌓이자 육지를 형성하였다 …(중략)… 시간이 또 흘러 남해 바닷가 보따낙가산 관음보살은 변종으로
    나타난 원숭이를 보고 그를 대륙으로 보내어 살게 했다. 원숭이는 불도를 지키며 얄룽 계곡의 한
    동굴에 살게 되었는데, 수컷 원숭이는 '투'였고, 암컷 원숭이는 '초'였다. …(중략[2])… 그 후 나찰녀와
    원숭이 사이에서 서로 다른 성격과 외모를 가진 여섯 자식을 낳았다. 그 후손들은 점차 털이 줄고
    꼬리가 짧아지면서 일어나 사람처럼 변하였고, 결국 사람이 되었다."

    선사시대
    1만여 년 전부터 티베트 지역에서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고고학적인 증거가 있다.
    티베트버마어파의 티베트인들은 선비족 지배층들이 이끌었고 티베트고원에서 생활을 했다.
    철기시대의 구릉지 마을과 매장지가 티베트 고원에서 발굴되었는데, 티베트의 고대 문서를
    따라 샹슝(象雄 Zhang Zhung)문화로 명명되었다. 이들은 뵌(Bön) 지역 문화의 기원으로 알려졌다.

    티베트 왕조(토번)
    티베트에는 옛부터 지속적으로 국가가 존재했는데 한자로 기록된 역사는 7세기초에 남리루쩬
    (囊日論贊)왕이 중국에 사신을 보냈음이 확인된다. 기원전 2세기에 티베트에 여러 국가가 등장하였
    으나 티베트 최초의 통일 국가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왕국으로서 다스린 송첸캄포(松贊干布,
    581 ~ 649년)로부터 시작된다.

    670년 ~ 692년에는 당나라와 대비천 전투(669년)를 통해 타림 분지와 인접한 신장과 카슈가르시를
    점령하고 사천 지방을 정복하였다. 승풍령 전투(678년)에 승리해 지위를 확고히 하였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유린했으며 장안 바로 옆까지 정복하였다.

    티베트인들은 아랍, 투르크와 위구르와 동맹을 맺었다. 고선지는 서쪽 토번에 의해 길이 막혀 위구르의
    영토를 우회하였으나 751년 탈라스 강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와 칼룩스의 연합군에 패하였고,  토번 20만
    대군은 장안에 오래 정주하며 장안을 학살을 하고 유린하였다. 당왕실의 황후와 당나라 여성들을 모두
    취하고 귀족들을 농노로 끌고가 장안은 황폐화되었다.

    821년 또는 822년에는 당나라는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두 나라의 국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양국 언어로 기록된 이 조약은 라싸의 조캉사원 앞의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티베트는 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왕국을 유지했다. 이 시기의 티베트는 토번(吐蕃)이라 불렸고, 티베트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3세기 동안 9대의 왕이 다스렸다.

    몽골과 청나라
    이후 티베트는 13 ~ 14세기에는 원나라의 간접적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정복된 한족들보다
    훨씬 높은 지위를 확립했다. 1750년에는 청나라 건륭제에 의해 보호령이 되었고 한족보다 우대받아
    만주족 동급의 지위를 확립했다.

    티베트 왕국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티베트의 13대 달라이 라마는 중화민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한다.
    하지만 중화민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1913년 몽골과 양측이 독립 국가로 국제적인 승인을 받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으로 몽장
    조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몽골에는 러시아 제국, 티베트에는 영국이 무기, 차관을 제공하는 등 외부의
    지원이 있었으나, 영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당시의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몽골과 티베트를 독립국으로서
    인정하는 나라는 없었다.

    중국의 지배
    청나라의 멸망 이후, 중화민국의 역대정권은 독립국으로서 존재한 티베트를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였
    으나, 북경정권의 시대에는 군벌의 혼전, 남경국민정부 시대에는 대일전쟁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
    에 대하여 압력은 행사하였으나 본격적인 군사적 침략은 하지 못했다.

    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은 티베트를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티베트의 평화적인
    해방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 1951년 5월 23일 티베트와 십칠조협의를 체결하여 강제 합병하였다.
    이로써 티베트는 최초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많은 티베트인들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했다.

    지리와 생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티베트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네팔과의 국경에는 에베레스트 산이 있다.
    수도(중심지)는 라싸(Lhasa, 拉薩)이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되었다는 특성 때문에 희귀한 동식물
    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한족의 유입에 따른 지역 경제의 성장으로 티베트 특유의 환경은
    위협받고 있다. 티베트의 70%는 초원이어서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이 차지하고 있다.
    면적은 122만 8400km2이며 인구는 274만명이다.

    티베트 불교
    불교는 인도로부터 전래되어 7세기에 국교의 자리로 차지했다. 이 불교가 티베트의 특유의 문화인
    티베트 불교로 발전한다. 티베트 불교는 바즈라야나(Vajrayana)의 독특한 형식을 따른다. 티베트의
    불교는 티베트에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몽골, 네팔, 부탄, 라다크 등의 국가들에서도 행해진다.
    중국의 통치 이후 중국 정부에 의해 불교는 정치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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