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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펼쳐보기 222 / 그외 지역 04 - 포클랜드 제도

작성자 : 이일의


    세상 펼쳐보기 222 / 그외 지역 04 - 포클랜드 제도

    💀 영국vs아르헨티나 영혼의 맞다이...!! / 💀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난 이유, 그 결과


    KBS1TV 특파원 현장보고 20120331- 분쟁의 땅 포클랜드를 가다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7 가지 사실



    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는 남대서양에 있는 영국의 실효지배를 받는 군도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영토 분쟁 지역이다. 현재는 주로 영국의 해외 영토로
    간주되고 있다.

    영국-아르헨티나 간의 영토 분쟁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불씨가 되어 아르헨티나 군이 침공해
    몇 달 동안 포클랜드 제도를 점유하기도 했다. 말비나스라고 하는 것은 이 곳에 처음으로 도착한
    이들이 프랑스의 생말로 주민이었기에, 프랑스어로 '생말로'의 혹은 '생말로 주민'을 뜻하는 말루인 섬
    (프랑스어: Ile Malouines 일 말루인)이라고 부른 것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이다.

    역사
    최초의 발견과 상륙
    포클랜드 제도의 최초의 발견자에 대한 것부터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쪽 주장은 엇갈린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6세기 초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람으로 구성된 마젤란 탐험대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서는 또 그들 나름대로 16세기 말 영국의 항해사 존 데이비스가 최초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그래서 존 데이비스를 이 제도의 최초 발견자로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사실 양측의 주장 모두 다 문서로 확인된 기록은 없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오스만 제국의 피리 레이스가 제작한 지도에도 이 섬으로 추정되는
    섬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6세기 경에 발견된 것은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반면, 포클랜드 제도에 발을 디딘 최초의 상륙자는 17세기 말 영국 탐험대라는 것에는 논란이 없다.
    포클랜드라는 이름도 이 탐험대가 포클랜드 자작이라는 당시 해군관료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아무튼 영국이 먼저 포클랜드 제도에 발자국을 남긴 '기록'이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최초의 정착
    처음으로 포클랜드 제도에 정착한 것은 1764년 프랑스인들이다. 그러나 1766년, 프랑스 정착민들은
    보상을 받고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권리를 스페인에게 양도 한다. 그러나 이와는 상관 없이,
    1766년부터 영국인들이 포클랜드 제도에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때 양측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4년 뒤 앞서 세운 영국의 기지를 발견한 스페인인이 침공해서
    점령했으나, 다음해 영국에 반환했다. 그러다가 1774년 경제적인 문제로 퇴거하면서 영유권을 표시하는
    명판을 남겨두었다. 스페인 역시 죄수 캠프로 섬을 이용하다가 중도에 철수했다.

    분쟁의 시작
    1816년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다. 독립 당시에는 포클랜드 제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1826년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이 아르헨티나에 귀속된다고 공식 선언한다. 1828년에
    아르헨티나는 독일 상인을 파견해서 관리한다. 그런데 독일 상인이 불법적으로 어선을 나포하고
    해적질하자 자국 어선에 대한 해적질을 처단하고자 미해군이 독일 상인의 기지를 포격해서 파괴한다.
    1833년 영국은 해적 행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주변 해역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전함을 보내서 포클랜드
    제도를 군사력으로 점유한다.

    분쟁 해결을 위한 노력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권리도 같이
    승계했다고 주장한다. 영국으로서는 자신들이 최초로 상륙하고 자국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영토를
    되찾았다는 입장이었다. 영국에 접수된 이후, 이 제도는 100여년간 영국에 의해 평화적으로 점유된다.
    영국에 의한 점령기간 중, 약소국 아르헨티나는 최강국 대영제국을 상대할 수 없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 세계적인 탈식민지화 추세에 따라 1946년 아르헨티나가 다시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1965년 유엔총회는 식민지의 독립을 추구하는 결의(결의 2065/XX)를 채택했다.
    영국계 주민들이 대다수였던 포클랜드 제도의 주민들은 아르헨티나에 의한 지배를 반대했다. 1973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한다. 유엔총회는 양국이 분쟁해결을 위한
    평화적인 방법을 추구할 것을 결의했고, 이에 따라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회담을 시작하였다.

    이후 1982년 2월까지 꾸준히 협상이 지속됐으나, 영국으로서는 이 협상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었고,
    1982년 3월, 아르헨티나 외무부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 않고 있다며, 협상이 신속히 진행되지 않으면
    더 이상 협상할 수 없고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한다.

    이후 양국간에 긴장감이 높아지게 된다. 중남미의 모든 국가들은 포클랜드 제도에 대해 아르헨티나의
    영토로 인정하고 이를 반대하는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상태에서 미주지역 국제기구를 창설하는 것에
    최종 합의를 했다.

    지리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으로부터는 12,173 km씩 이격하고 있는 반면 아르헨티나로부터는 아르헨티나의
    티에라델푸에고섬의 북동쪽으로 약 400여 km정도 이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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