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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를 기억하는 티니언 원주민

작성자 : 이일의
    
      "아이고!" 를 기억하는 티니언 원주민   
    
       전사적지_답사기 
       작성자: 부국강병조국통일
    
    티니언 섬(Tinian)은 미국 자치령인 북마리아나 제도의 섬으로 괌 섬 북쪽 160 km에, 사이판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인 에놀라 게이가 티니언에서 
    원자폭탄을 탑재하고 이륙, 2531 km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세계 최초의 핵공격이었다. 
    농축우라늄탄인 리틀 보이가 사용되었다. 
    
    
    ‘아이고!’를 기억하는 티니언 원주민 
     
    한반도로부터 약 3000Km 떨어진 티니언! 태평양전쟁 당시 수많은 한국인들이 징용자나 위안부로 끌려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비극의 섬이기도 하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지 오늘날에도 스쿠버다이버들이 
    해안주변을 잠수하면 침몰한 함정이나 추락한 비행기 잔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현지교민 말에 의하면 당시 가혹한 노역에 시달린 한국인들이 숙소에 오면 “아이고! 아이고!”라는 신음소리
    를 많이 냈다. 전쟁이 끝나고 한 동안 원주민들조차 ‘아이고’라는 한국말은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태평양 끝자락 티니언과 일본의 전쟁준비 
    앙상한 골조만 남은 2층 막사의 일본군 제1항공함대 사령부! 건물입구에는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한글·영어·일본어로 표기되어 있다. 1930년대 시작된 일본의 전쟁준비는 집요하고도 치밀했다. 
    이미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이판·티니언을 포함한 곳곳에 많은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이 작은 섬에도 4개소의 비행장을 만들었고 주변에 통신소·방공호시설도 완비했다. 견고한 원통형 방공호 
    속에 들어가니 화생방 방어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구일본군 비행장은 잡초에 덮여 있었지만 세계를 제패
    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야욕은 아직도 살아 있는 듯 했다. 
    
    
     
    
    
    일본군 제1항공함대 사령부 옛 건물
    
    ▶섬 곳곳의 폐기된 군사시설물과 전장잔해
    일본군 비행기지를 돌아보고 안내인 A씨와 주변지역을 살펴 보다 “일본군 연료보급소”라는 작은 팻말을 
    발견했다.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니 대형벙커가 나타났다. 벙커 안에는 녹슨 드럼통들이 뒹굴고 일부 천정
    은 시멘트가 떨어져 그물 같은 철근이 보였다.
    자동차로 비행장을 벗어나니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는 철망에 살벌한 해골표시판과 불발탄 경고문까지 
    붙어있다. 주변 바닷가에는 차량 크랭크축 등 전쟁잔해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또한 산호세 마을 입구
    에 전시된 전투기 프로펠러와 엔진, 대포 포신은 후세들에게 두고두고 전쟁의 참화를 잊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았다.  
    
    
     
    일본군 연료창고인 동굴 내부(일부 드럼통이 남아 있음)
    
    ▶미 해군공병대 활약과 미국의 전시생산능력 
    1944년 8월 1일, 미군은 악귀처럼 저항하는 일본군을 격멸하고 티니언을 완전히 점령한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328명의 전사자와 1,600여명의 부상자가 있었지만 일본군은 8,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Sea Bee(바다벌)”이라는 별칭을 가진 미 해군공병대! 티니언을 점령하자마자 그들은 패잔병을 소탕해 
    가며 순식간에 대형 활주로 2개소를 건설했다. 
    
    미국은 전쟁 중 건설부분 노동자 26만 명을 뽑아 해군공병부대를 창설했다. 당시 미 해군장관 포레스털은 
    “공병대원들은 산양처럼 냄새나고 개처럼 생활하고 말처럼 일했다. 그러나 누구도 열악한 전장여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사실 태평양전쟁을 그들은 등에 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찬양했다. 
    또한 미군은 주변해안을 준설하여 대형수송선 8척을 한꺼번에 수리할 수 있는 도크까지 만들었다. 이로써 
    해상전투 후 손상을 입은 군함들이 하와이까지 가지 않고 가까운 티니언에서 수리를 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은 전쟁기간 중 선박건조과정을 표준화하여 1만 톤 급 수송선을 1주일 만에 1척씩 건조했다. 일본은 
    이런 미국의 전시생산능력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힌 한민족의 서러움
    70여 년 전 이 조그마한 섬에서 미국과 일본은 사생결단의 혈전을 벌렸다. 그러나 이 전쟁과 아무 관계도 
    없었던 한민족은 세계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짓밟히기만 했다. 수많은 선조들이 티니언에서 목숨을 잃었
    지만 오직 희생자추모비 1개만이 비극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을 뿐···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가족회 회장 양순임(76)씨는 오랫동안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 왔다. 
    “1940년대 시아버지 형제와 친척 동생 10명이 한꺼번에 징용영장을 받았다. 그들은 몰래 간장을 몇 사발씩 
    들이켜 일부는 결핵환자로 판정받아 강제징집을 피했다. 
    그러나 맏형 시아버지와 몇 명의 형제는 남양군도로 끌려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어느 곳에서 돌아가셨
    는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위패를 망향의 동산에 모시고 있다.”라고 했다. 아마 이들도 티니언에서 일본인의 
    가혹한 노동과 학대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세계역사의 흐름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위정자들의 잘못
    을 고스란히 민초들이 덮어써야만 했던 것이다. 
     
    ▶수난의 현장에서 다시 피는 한국인 후예 
    티니언의 대형카지노에 근무하는 안내인 A씨는 틈틈이 여행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전쟁유적지에서 한국인 
    희생자 이야기를 하며 누구보다 가슴 아파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티니언과 한인들의 인연도 결국은 
    태평양전쟁 때문에 시작되었다. 
    티니언 공항에서 한인 여학생 1명을 만났다. 그녀는 티니언 고교에서 최우수학생으로 선발되어 히로시마에 
    교환학생으로 간단다. 이 학생을 보며 A씨는 “100여 년 전 강대국에 의해 우리 민족은 본의 아니게 전 세계
    로 흩어지는 비극을 당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수난을 밑거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의 능력을 발휘
    하고 있습니다. 이곳 티니언 한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인의 우수성, 근면성, 창의력을 다른 민족은 
    도저히 따라 올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티니언 고교 최우수 학생인 한인 여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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